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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일교수의 화성학
강준일 교수의 화성학에 관한 폭넓은 지식이 집약된 화성학 책이다.
화성학 에 관하여...
화성학은 조화에 관한 학문이다.
소리가 우주 진동의 산물이라면, 화성학은 우주의 조화체계를 다루고 있다.
이렇듯, “화성학”을 그저 편하고 쉽게 이해하리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 화성학의 지혜는 지난 천년 서양문화의 집적의 산물이다. 그런 만큼 가치가 높고 이치가 심오하리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음악을 떠나 화성학과 가장 비슷한 저술을 찾아본다면 그건 아마도 공자의 “중용(中庸)”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중용이야말로 삶의 조화를 서술한 학문이다. 실제로 공자가 해설을 붙인 주역(周易) 64 괘(卦)의 조합 원리가 화성학 화음조합의 원리와 많은 점에서 일치한다. 그러하니 공자가 “예악 운운..” 한 것은 결코 흰 소리가 아닐 것이다.
화성법이 체계화된 17-8세기에 라프니츠(Leipniz)는 미적분학을, 뉴턴(Newton)은 고전역학을, 헤겔(Hegel)은 변증법을 완성했다. 라모(Rameau)가 화성학 이론을 발표한 시기(1722년)에 바하(J. S. Bach)는 48 평균율곡집을 완성했다. 이른 바 서구역사의 “위대한 시대” 라는 17세기에 화성학이 완성된 것이다. 화성학은 이제까지 갇혀있던 대위법 선형양식의 좁은 울타리를 넘어서 화성적 비선형 양식으로의 문을 열었다. 이런 결과로 인류의 의식은 차원을 넘어 무한의 세계로 비약할 수 있게 되었고, 마침내 고전주의 음악의 찬란한 전성기를 맞는다.
화성학은 소리 진동의 조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실제로 물리학자들은 자연배음을 조화진동이라고 부른다. 조화진동이 정수배열로 이루어져 있듯이, 진동의 조화는 수의 조화와 일치 한다. 다시 말해서 화성학은 수와 상통한다. 그런 의미에서 수의 철학자 Pythagoras가 화성학의 시조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지난 2천년 동안 서구 음악은 진동의 조화를 추구해왔다. 그런 이유로 화성학 체계는 음악학자와 수학자가 함께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물론 창조적 작곡가 없이 화성학 독자적 활약은 있을 수 없다. 이 점이 학문과 예술의 차이다.
이렇게 조화의 세계는 무한하다. 과학자, 수학자, 철학자들과 꼭같이 예술가들 역시 조화를 추구한다. 이 말은 조화의 세계가 지성, 감성, 논리, 뿐 아니라 직관 등 여러 관점에서 다루어자고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지금까지 화성학이 이루어 낸 성과는 조화의 한 부분임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화성학을 더 넓고 깊은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함으로서 새로운 영역의 조화를 발견하고 이해의 폭을 넓혀갈 수 있을 것이다.
고전화성학은 제한된 음의 소재 안에서 이루어졌다.
온음계는 가장 포괄적이고 보편화 된 음계가 분명하지만 모든 음을 아우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유형의 소리들도 그들 나름의 조화의 질서를 지니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특히 우리 민족음악처럼 독자적 소리의 세계를 지닌 경우에 새로운 관점의 조화체계를 통해 화성의 세계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20세기에 들어 작곡가들은 과거의 화성 학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역에서의 음의 조화와 질서를 탐구하고 실험하였다. 그 성과는 과거 천년의 결과를 능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결과물이 사회문화 내부로 받아들여질 것인가는 알 수 없다. 단순히 이해하는 것으로 다른 문화의 관습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처럼 화성의 규칙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아무리 획기적 발상에서 얻어진 화성이라도 천재 작곡가의 손을 거쳐 조화의 아름다움을 증명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모두 부단히 새로운 길을 모색해가야만 한다. 이런 점에서 새로운 화성의 길을 탐구하고 실험하기 위한 공부를 게을리 해서 는 안 된다. 이런 뜻에서 화성학 연습 이전에 그 원리에 대한 충분한 연구와 이해가 필요하다.
화성학 공부에 앞서 필요한 준비
1. 화성학 공부에 앞서 음악 기초이론 공부는 필수적이다.
기초이론, 악보표기, 읽기, 음정, 음계, 화음구성, 등을 꼭 알아야 한다. 특히 음정, 음계를 모른 채 화성학을 시작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화성학의 정리는 화음진행을 통해 서술되고 있으며, 또 화음은 음정의 구조체이고, 음정은 음계를 소재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 화음은 음정이 만드는 구조물 이다.
화음을 이루고 있는 음정 모두를 아는 것이 화음의 성질을 이해하는 길이다. 알고 보면 화음 진행은 성부 상호 간의 관계(즉 조화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3. 연습문제를 거치지 않고도 화성학을 공부할 수 있다는 생각은 망상이다.
예술은 육체의 숙련을 전제로 하는 정신 작업이다. 연습은 몸에 배어 숙달에 이를 때 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4. 최종적으로 모든 과정을 소리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음악이 소리의 예술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오선지 위에서 이루어진 연습 결과를 실제 소리로 익히기 위해서는 피아노를 통한 훈련이 꼭 필요하다. 이 역시 몸으로 기억할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해서 익혀야 한다.
5. 어느 사회에나 질서의 규칙이 있듯이 화음 진행의 규칙 역시 소리 사회의 질서를 위해 지켜져야 한다.
이런 규칙을 무시한다면 아름다움에 이르는 길은 요원할 뿐이다.
6. 예술은 엄격한 조화의 질서 내에서 얻어지는 자유로움의 마술이다.
화성학은 한마디로 “통제를 배워 자유로움을 찾는 기술”의 학문이라 정의 할 수 있다.
저자 강 준 일
저자 강준일